원장 일상

매년 이맘때 아파트에선 물탱크청소를 합니다.

2004년 04월 08일

매년 이맘때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물탱크청소를 합니다.
한주전부터 공고를 하고, 전날 그리고 청소날 아침에 방송을 합니다.
이번에도 아침 아홉시부터 청소를 한다고 방송을 하더군요.

며칠 전 샤워기 꼭지의 덮개가 떨어지는 사건(?)이 발생했습니다.
마누라에게 꼭지를 사다놓으라고 말해놓고,
우선 머리묶는 끈(고무줄같이 늘어남)으로 덮개를 고정해서 사용했습니다.

요즘 샤워기 꼭지는 형태가 갖가지더군요.
이번에 산 것은 물줄기를 조절하는 기능 뿐만 아니라 거시기만을 위해 따로 작은 물줄기가 나오도록
되어 있어서 나는 내심 내일을 기대하면서 헌 꼭지를 새 꼭지와 교환했습니다. (말이 좀 이상합니다.)

큰놈이 이번에 들어간 고등학교가 아파트에서 꽤 멉니다.
스쿨버스가 댕기기는 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아침마다 거의 내가 학교에 실어다주곤 합니다.
오늘 아침도 실어다주고 흥분된 마음으로 옷을 벗고 샤워기를 틀었습니다.

아!
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?
샤워기 꼭지에서는 나와야할 물은 안나오고 바람빠지는 소리만 나는 것이 아닙니까?

벌써 아홉시인가하면서 시계를 보니 여덟시도 안되었습니다.
물탱크 청소를 한대서 주민들이 다들 물을 받아서 이미 앵꼬가 되었나보다 생각하면서
근처 목욕탕엘 갈 생각으로 옷을 다시 주섬주섬 주워입었습니다.

그 기분 아십니까?
헌 양말을 다시 신는 기분?
아니다 말이 잘못 되었다... 안씻은 발에 새 양말을 신는 기분?

찝찔한 기분으로 아파트 문을 나서는데 관리실에서 다시 방송을 하더군요.
배관을 잘못 건들어서 물이 엉뚱한 곳으로 새나갔대나 어쩠대나.
어쩝니까, 이미 엎질러진 물 아니 바닥난 물탱크이거늘.

남이 볼 새라 정신없이 목욕탕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.
뜨끈한 탕이 나를 반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.
그러나 정작 도착해보니 금일휴업이랍니다.

이때부터 내 모든 관심사는 오로지 목욕탕이 되었습니다. 왜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?
여자는 전화받으면서 요리하면서 라디오음악을 듣지만 남자는 오직 한가지 일만 한다는 것을.
나는 출근길을 걸으며 오직 간판을 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. (헛디뎌서 자빠질 뻔하기도 했습니다.)

그런데 보이라는 목욕탕은 안보이고 왠 생선탕간판만 보이는 것입니까?
하얀 바탕에 생선탕이라고 쓰인 간판이 그렇게 많을 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.
꾀재재한 몰골로 30분을 걸어서야 겨우 목욕탕을 발견했습니다.

얼른 들어가서 집에 있는 것보다 못한 기능을 갖춘 샤워기로 샤워를 하면서
오늘밤에 있을 멋진 샤워를 상상해보았습니다.
여러분도 기대되시나요?